탄소 줄이는 회사가 돈 더 번다

탄소배출권 팔아 수익 올려...선물시장까지 열릴 듯

“버리면 돈을 내야 하지만, 줄이면 돈을 버는 것은?” 이렇게 묻는다면, 우선 한가지 답이 떠오른다. 쓰레기다. 버릴 때 종량제 봉투에 담아야 하기 때문에 돈이 든다. 환경부가 갑작스레 시행을 유예(6개월)하지 않았다면, 6월 10일부터 일회용 컵을 돌려주고 보증금 300원을 받을 수 있었으니 쓰레기를 줄이면 돈도 벌 수 있었다. 탄소도 쓰레기와 유사하다. 발전이나 운송, 건설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기업은 탄소배출권을 할당받는데 할당받은 양 이상을 배출하면 그보다 적게 배출한 기업에서 탄소배출권을 사야 한다. 탄소배출권이 일종의 ‘온실가스 종량제 봉투’ 역할을 하면서 거래가 되는 것이다.

2021년 8월 22일 중국 북서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 하미에 있는 광열발전소를 공중에서 내려다 본 모습 / 신화연합뉴스

▲ 2021년 8월 22일 중국 북서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 하미에 있는 광열발전소를 공중에서 내려다 본 모습 / 신화연합뉴스

본업 못지않게 재미 보는 기업들

자발적 시장은 감축 의무가 없는 다양한 주체(기업·기관·비정부기구·개인 등)가 자율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추진하고, 그 실적을 인정받아 배출권 거래에 참여하는 시장이다. 현재 자발적 탄소 시장 규모는 전체 탄소 시장의 1%인 3억6000만달러(2020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2030년이 되면 500억달러(약 63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자발적 탄소 시장 확대를 위해 유엔 주도로 만든 태스크포스(TSVCM)가 203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기업의 자발적 감축 목표량 5억t에 배출권 가격 100달러(t당)를 가정해 추정한 수치다.

탄소는 버리면 지구를 덥게 만들지만, 줄이면 탄소배출권 판매로 큰돈을 벌 수 있다. 이미 탄소배출권 판매로 본업 못지않게 쏠쏠한 재미를 보는 기업이 많다. 국내의 대표적인 사례로 휴켐스를 들 수 있다. 휴켐스는 암모니아를 수입해 질산 계열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온실가스 저감 시설을 설치해 연간 158만t의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 온실가스인 아질산가스 배출량을 축소한 데 따른 대가다. 이 회사는 정부에서 할당받은 양보다 훨씬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남은 배출권을 정유사·화력발전사 등에 팔아 수익을 얻는다. 지난해 탄소배출권 영업이익이 163억원에 달한다. 전체 영업이익(771억원)의 21%인데 탄소배출권 영업이익률은 104.4%로 본업인 화학 부문(9.1%)을 압도한다.

자발적 탄소 시장을 노리는 기업도 있다. 인테리어 소재를 생산하는 한솔홈데코의 경우 나무를 심어 확보한 탄소배출권을 판매한다. 뉴질랜드 정부에서 조림 탄소배출권을 승인받아 뉴질랜드 탄소배출권 리스회사에 판매 중이다. 2031년까지 720만뉴질랜드달러(약 58억원)의 수익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탄소배출권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부상하면서 스타트업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버려진 배·전복 껍데기 등의 폐기물을 업사이클링하는 스타트업인 루츠랩은 내년부터 정유사, 회계법인과 함께 탄소배출권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김명원 루츠랩 대표는 지난 5월 16일 열린 ‘비즈니스 액티비스트’ 강연에서 “지금까진 탄소를 많이 내는 자동차, 반도체 회사 등이 돈을 많이 벌었다면, 이젠 탄소를 줄이는 회사가 돈을 버는 시대가 올 것”이라면서 “내년 탄소배출권 매출액이 약 110억원으로 예상되는데 우리가 하는 사업에 부수해서 하는 사업이라 인건비가 들지 않아 순수입으로 잡히는 부분이 크다”라고 말했다. 박기현 SK증권 연구원은 “조림이나 폐기물 업사이클링 등으로 탄소 저감 효과를 인정받으면 이를 근거로 배출권을 받을 수 있다”면서 “국내의 경우 최대 3년간 보유할 수 있는데 가격이 비쌀 때 팔면 충분히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탄소 줄이는 회사가 돈 더 번다

전기차 제조사인 테슬라도 탄소배출권 판매로 큰돈을 번다.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미국 13개주에서 시행하는 ‘무공해차량 의무판매제도(ZEV)’ 덕분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의 평균 판매량을 기초로 친환경차 의무 비중인 ‘크레딧’을 할당하고 의무 충족량 부족 시 1크레딧당 5000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중국도 유사한 제도를 시행한다. 크레딧은 거래할 수 있는데 전기차만 판매하는 테슬라는 남는 크레딧을 판매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자동차 회사가 판매하는 모든 친환경차(CO2 배출량이 ㎞당 50g 미만) 1대당 하나의 탄소배출권을 부여한다. 차량의 탄소배출량을 줄이면 탄소배출권을 인센티브로 받을 수 있다. 테슬라는 이렇게 확보한 크레딧과 탄소배출권 판매로 올해 1분기에만 6억7900만달러(약 8530억원)를 벌었다. 이전 분기보다 두 배 이상 늘어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크레딧 판매금액은 2019년 9억8600만달러에서 2021년 14억6000만달러로 급증했다.

은행·증권사, 자발적 탄소 시장 진출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회사도 자발적 탄소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항공분야를 비롯해 산업 전 분야에서 탄소 배출 규제가 시작되면서 자발적인 거래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규제시장만으로는 늘어나는 배출권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다. 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ESG) 경영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기업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규제시장만으로는 탄소중립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불가능하다는 당위도 있다. 감축 의무가 강제로 할당된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규제시장은 글로벌 전체 탄소배출량의 5%만을 차지한다.

박기현 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 주관으로 콜시어(CORSIA·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가 시행되면서 일정량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자발적 시장에서 거래되는 탄소 크레딧을 사서 상쇄해야 한다”면서 “그만큼 배출권 수요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탄소 크레딧을 만드는 감축 프로젝트의 수는 제한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사들은 그간 대규모 기업고객을 확보하고 있다는 장점을 활용해 기업 간 배출권 거래를 직접 중개하는 사업을 주로 했다. 배출권 발행시장에서는 가격 변동성이 큰 탄소배출권 현물보다 선물가격을 활용한 파생상품 개발·판매가 주를 이뤘다. 앞으로 자발적 시장이 성장하고, 신규 배출권 공급 역량이 중요해지면서 금융사의 사업도 중개·파생상품 중심에서 감축 프로젝트에 기반을 둔 배출권 창출 업무로 빠르게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감축 프로젝트로 탄소배출권을 만들어내는 데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 금융회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금융회사들은 자발적 시장과 ETS 시장(규제시장)과의 차익거래로 이익을 볼 수 있다. 성지영 우리은행 ESG·기업금융연구실 수석연구원은 “자발적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과 배출권 거래 시장과의 가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금융사들은 싼 가격으로 배출권을 발굴해 비싸게 팔 기회를 만들어내려고 한다”면서 “해외 글로벌 은행 중에서는 신재생 발전이나 조림 사업 기회가 많은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와의 네트워크가 강한 바클레이즈와 SC 등이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의 경우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투자은행이 국내 시장에서 국내외 기업 간 탄소배출권 중개업무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탄소 줄이는 회사가 돈 더 번다

한국거래소는 국책은행(산업은행·수출입은행)과 3개 증권사(SK증권·하나금융투자·한국투자증권)의 시장참여를 허용했는데 올해부터 나머지 17개 증권사로 시장참여를 확대했다. 특히 관심을 보이는 곳은 NH투자증권으로 지난 5월 초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고 금융감독원에 자발적 탄소배출권 거래 업무의 부수업무 신고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기현 연구원은 “글로벌 기업들이 2050 넷제로를 목표로 내걸고 있지만, 기업 활동에서 탄소를 아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발적 탄소 시장에서 탄소 크레딧을 구매해 상쇄하게 될 것”이라면서 “증권사들은 이런 시장을 노리고 해외 감축 사업으로 만든 배출권을 중개하거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하듯 증권사가 직접 해외에서 탄소저감 사업을 하고 거기서 생긴 크레딧을 국내나 해외에서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선물거래시장 개설 예상

현재 국내 배출권 시장은 가격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월 제한과 차입제도의 결함 탓이다. 배출권은 연도가 붙어나온다. 기본적으로 1년 안에 써야 한다는 뜻인데, 남아서 내년에 쓰려면 남은 수량의 30%를 순매도해야 한다. 90장이 남았으면, 30장만큼을 순매도해야 60장을 미래에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월을 목적으로 매년 6월 환경부 인증을 앞둔 몇개월 사이에 순매도가 늘면서 가격이 폭락하게 된다. 배출권 가격이 폭락하면 돈을 들여 온실가스 저감 시설을 만들어 배출권을 확보할 유인이 없어진다.

반대로 2021년 배출권을 제출해야 하는데 수량이 부족하면 2022년 배출권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차입제도가 있다. 배출권거래제 계획 기간(2021~2025년은 3차) 안에 있어야 한다. 수량 제한이 있긴 하지만 미래의 배출권을 끌어다 쓰면서 초반엔 가격이 폭락한다. 계획 기간이 끝날 때쯤엔 수량이 부족해져 가격이 폭등하면서 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궁극적으로 이월제도와 차입제도를 손봐야 하지만 이르면 내년 열릴 것으로 보이는 탄소배출권 선물거래시장이 문제 해결에 조금은 도움이 될 전망이다. 시장의 유동성을 높이고, 현물 가격의 변동성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어서다. 박 연구원은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은 가격 예측이 어려워 1년의 재무계획을 짜기가 어려웠다”면서 “예를 들어 동서발전이나 한전에서 화석 연료로 발전하는 자회사의 경우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이 영업이익보다 크다. 굉장히 큰 돈을 탄소배출권 구매에 쓰는데도 참여 회사가 몇 개 없다 보니 사고 싶어도 살 수 없고, 팔고 싶어도 팔 수 없어 가격 변동 리스크에 그대로 다 노출된다”고 말했다. 선물시장이 생기면 현물을 팔고 선물을 사거나 반대로 현물을 사고 선물을 파는 식으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차익거래를 하면서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